복수노조, 확대의 기회인가 분열의 위기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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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으로 “근로자의 단결권이 제한 없이 허용됨에 따라 노조 설립이 지금보다 10%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올해 노사관계의 최대 불안 요인으로 ‘복수노조 허용’을 꼽았다. 정부와 자본의 전망대로라면 7월 이후 노조가 우후죽순 증가하여 노사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 공산이 큰 셈이다. 과연 사실일까? 문제는 법이 아니라 실력 작년 하반기 한국노동연구원이 212개 기업 인사, 노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인 무노조 기업 노조 조직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노조 기업에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에 58.9%, ‘별로 없는 편’에 37.5%가 응답한 반면 노조 설립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항목에 응답한 기업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뼈아픈 얘기지만, 자본가들은 법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의 실력이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기존 법체계에서도 계획과 의지만 있었다면 초기업단위 형태로 무노조 기업에서 노조 결성이 가능하지 않았냐는 식이다. 비단 ‘무노조 경영’ 전략을 관철하고 있는 삼성 포스코 계열사나 이들을 정점으로 위계화 된 전자 철강 업종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 노조 조직률은 최근 수년간 10% 언저리에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78%가 속한 100인 미만 중소·영세 사업장의 경우 조직률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산별노조 전환도 비정규직 조직화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조합원 중 비정규직 비율이 2009년 9월 기준 3.37%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80%가 산별노조로 전환했지만 ‘무늬만 산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의 지체야말로 복수노조 시대의 가장 큰 암초인 셈이다. 물론 주체의 의지와 실력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제도적 요인도 있다. 자본은 복수노조의 난립으로 인한 교섭비용 증가를 이유로 창구단일화 방안 법제화라는 든든한 무기를 확보한 상황 아닌가. 어용노조 사업장에서는 소수노조의 교섭권·파업권을 봉쇄할 수 있고 민주노조 사업장에서는 다수노조 지위를 끊임없이 위협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꽃놀이 패’를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장) 단위 창구단일화로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산별교섭이 무력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전임자임금지급금지제도와 맞물려,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 사업장 조직화도 더욱 어려워졌다. 한 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노조 분할 가능성 확대돼 이상을 종합하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변화만으로 조직률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반대로 기존 노조의 분할 또는 제2노조의 신설로 노조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확실히 커졌다. 박재완 장관의 언급은 정확히 이런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민주노조 운동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금속노조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지회·지부에서 3년 이내 복수노조가 병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완성차지부를 포함한 1,0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그 비율이 95%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복수노조가 병존할 경우 기존 노조로 포괄되지 않은 사무·연구·기술직을 중심으로 신규 노조가 설립된 뒤 기존 조합원의 일부를 조직하는 방식이 주된 형태를 이룰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새로 설립되는 노조의 활동 성향은 기존 노조보다 협력적일 것이라는 응답이 무려 94.3%에 달했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체 설문조사에 응한 68%의 지부에서 향후 3년 이내 복수노조 병존 가능성을 점쳤다. 병원 사업장의 특성 상, 간호사와 여타 직종의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가 크고 사측의 개입으로 어용노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 어용노조가 설립될 경우, 복리후생이나 산별노조·민주노총 탈퇴, 조합비 인하 등을 명분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애초부터 노동3권 행사에 제약이 많은 공공부문의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철도의 경우 이미 ‘사측노조’인 철도산업노동조합과 ‘관리자노조’인 공사노조가 존재하고 있다. 도시철도나 지하철에서 어용노조를 추진하는 세력과 연합하여 향후 궤도 업종을 중심으로 제3노총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동서발전의 사례에서 확인되듯이, 발전에서도 사측의 탄압을 등에 업고 제2노조 추진 세력이 조만간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현대제철의 사례처럼, 복수노조가 병존할 경우 노동조합 간의 관할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러한 노-노 갈등에 사측이 적극 개입하여 노사 협조주의를 조장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초심과 원칙으로 돌아가자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민주노조의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민주노조 확대의 기회이기는커녕 분열의 위기로 보이기만 한다. 노조법 개악 당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으로 무기력하게 대응했던 민주노총에게 지금 와서 달리 뾰족한 수가 있겠냐는 비관도 만연하다. 그러다보니 개별 교섭을 통해 기존 노조의 권리와 지위를 보장받으려는 단기적 실용주의가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그러나 작년 전임자임금지급금지제도 대응에서 똑똑히 확인한 것처럼 사업(장) 수준의 미시적 대응은 필패의 지름길이다. ‘법과 원칙’에 입각한 노동부의 시정 명령에 무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조법 재개정은 민주노조가 복수노조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에 동반해서 조직화 전략을 입체적으로 수립하는 것도 중차대한 과제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먼저 확인해야 할 점이 있다. 오늘날 민주노조 운동이 위기에 처한 원인을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는 사실 말이다. 조직률의 하락, 노동자계급 내부 격차의 확대,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을 포괄하지 못하는 현실, 다시 말해 계급 대표성의 위기가 곧 복수노조 시대의 위험 요인 아닌가. 민주노조 운동의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조직의 생존이나 확대가 궁극적인 목표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다는 자주성,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총의에 따라 운영된다는 민주성, 노동자 투쟁의 목표는 당장의 실익보다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함으로써 단결을 강화하는 데 있다는 연대성이야말로 오늘 되새겨야 할 초심이요 원칙이다. 가장 멀게 보이지만 가장 가까운 길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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