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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함바’, 30년 이상 지속된 ‘착취’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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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 ‘돼지밥’이라 불리는 노동자 밥으로 ‘황금알’과 ‘비자금’조성

“노임을 법정 임금에 미달된 액수로 받으면서 게다가 간죠가 보름 간격인지라 현금 없는 대부분의 우리 부랑 인부들은 전표를 헐값에 팔아 일용품을 사든지, 전표를 본 가격보다 싸게 함바의 숙식대로 치르고 있습니다. 서기들은 전표로 부당한 이윤을 취하고 함바는 거기대로 노임을 착취합니다. 대부분의 객지 인부들은 함바와 서기, 그리고 그들이 경영하는 매점에 이삼천 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다른 일터를 찾아 뜨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어서 묶여버린 것입니다. (중략)

 

함바의 조건은 마치 가축의 우리 같은 데다가 십여 명 이상씩 때려 넣고, 각 집에서 형편없는 식사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함바는 회사의 운영에 속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규모의 공사를 벌이는 작업장에 개인의 권리금 내지는 소유권에 의하여 함바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올시다.”

 

- 황석영 [객지], 1971

 

1970년대, 소설가 황석영이 펴낸 중편소설 [객지]에는 7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참혹한 공사현장의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소설에는 독점적으로 운영되는 함바와 서기들의 노동자 착취, 그리고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제시하며 이를 통한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파업투쟁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이듬해에 발표된 이 소설은 70년대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히 전달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소설 속의 건설 노동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을까? 소설 말미에 주인공 동혁은 소장의 말에 속아 파업투쟁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오는 노동자들을 보며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루지 못한 ‘내일’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소설 속에 멈춰서 있다. ‘함바’를 이용한 건설노동자들의 착취. 벌써 30년 동안 흘러온 이야기다.

 

21세기의 ‘함바’, 거대 권력으로부터의 착취 공간

 

‘돈이 될 만한 곳’은 어디든지 자본이 뿌리내리는 한국 사회. 아무도 찾을 것 같지 않는 건설 현장의 허름한 함바집 역시 자본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상 70년대의 함바집 역시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공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개별 건설업체와 소장들이 독식했던 함바는 현재 더욱 광범위한 권력층까지도 개입하는 사례를 낳고 있다.

 

이번 ‘함바집 비리’에 연루된 이들은 대형 건설사 임원들을 비롯해 경찰 수뇌부와 정,관계 고위 인사들까지 포함돼 있다. 이미 지난 12월 말, 검찰은 SK건설 김명종 사장(60) 등 대형 건설사 임원들을 줄소환 했으며, 11일에는 한화건설 이근포 대표(60)를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식당 운영권을 내주는 대가로 2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검찰은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받은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이밖에도 비리에 연루된 정계인사, 공기업 임원, 고위 중앙부처, 경찰 간부 등은 무궁무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함바집 비리의 중심에는 구속 기소된 브로커 유모 씨(65)가 있었다. 그는 정, 재계 인사들부터 경찰 고위 간부, 공기업 임원들과 관계를 맺으며 함바집 알선업을 해 왔다. 그는 우선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수십의 2차브로커를 동원했다. 이후 자신의 인맥을 앞세우며 운영권을 따 주겠다고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이 과정에서 유 씨는 운영권을 따 내기 위해 건설사 대표와 임원 등에게 돈을 건넸다. 또한 유씨와 친분 관계를 맺은 정계 인사와 경찰, 중앙 정부 관료들은 유 씨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 받으며 유 씨의 ‘스폰서’노릇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 씨는 스폰서와 로비 등을 통해 함바집 운영권을 따낸 뒤, 이를 2차 브로커들에게 팔고, 2차브로커들은 함바집 업자들에게 운영권을 매매했다.

 

소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는 함바집에서, ‘거위’는 함바집, ‘황금알’은 이윤으로 분리된다. 특히 어마어마한 황금알은 자본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하지만 황금알을 만들기 위해 착취를 당해야 하는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블라인드 처리된다. 반짝반짝 빛을 내는 이윤에 눈이 팔려, 사람들은 30년째 현장의 어두운 모습을 외면하고 있다. 30년간 ‘밥’ 먹는 것 까지 착취를 당해온 건설노동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건설노동자, ‘황금알’을 낳기 위해 ‘개밥’을 먹는다

 

“사람 먹을 음식이라고 할 수 없어요”
“식판 엎어버리고 싶죠”
“기본적으로 어느 함바를 가도 고기 구경하기 힘들어요”
“할 수 있다면 함바 말고 다른 식당에서 먹고 싶어요”

 

함바집의 식사 가격은 현장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4000~5000원 선이다. 밥과 국, 반찬정도의 식단. 노동자들은 이런 건설현장의 밥을 ‘개밥’, 또는 ‘돼지밥’이라고 부른다. 함바는 노동자들에게 밥을 팔아 평균 20~30%의 이윤을 창출한다. 600여명의 노동자들이 3년 여간 공사를 할 경우, 10억 원의 순 이익을 남기는 셈이다.

 

검찰이 지금까지 밝힌 함바 비리자금은 1억 5천 여 만원.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주장이 득세하다. 이에 대해 건설노조는 8일, 성명서를 통해 “다단계 하도급과 함바 비리자금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건설노동자”라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건설사에서는 원칙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식대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때문에 노동자들은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고 조악한 식판을 받아든다.

 

함바집 이외에 다른 곳에서의 식사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공사 현장 근처에서 식당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만약 다른 곳에서 식사를 했을 경우 소장의 눈총과 강압을 받아야 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부장은 “작년에 광주 H건설에서 일하던 분이 현장노조 사무실로 찾아왔다”면서 “대부분 노동자들이 사무실을 찾을 때는 체불 등의 문제를 가지고 오지만, 그 분은 함바가 열악하다며 찾아왔다. 시설이 열악한데도 현장 소장의 친인척이 운영하고 있어 다른데 가서 먹지도 못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세종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목수 A씨는 3600원 짜리 함바가 맛이 없고, 열악해 함바에 직접 4000원으로 식대를 올리고 질을 개선할 것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에 조금 나아지던 식단은 얼마안가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경기도의 한 현장에서는 음식의 질을 개선하라는 요구를 끈질기게 무시하는 함바를 해당 지자체에 신고하기도 했다. 지자체 조사 결과, 이 함바는 영업신고도 하지 않은 채 운영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함바집의 환경개선을 내세우며 투쟁한 현장도 있었다. 전재희 부장은 “작년 경기도 시흥에 있는 한 현장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함바 하나만 가지고 2~3개월을 싸운 적도 있다”며 “이들은 매일 고기반찬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일 식단을 알 수 있게 게시하고 영양 잡힌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또한 매일 먼지구덩이에서 일을 하는 그들은 밥까지 먼지구덩이에서 먹을 수 없다며 환경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싸움 이후 함바는 조금 개선될 여지를 보였으나, 또 다시 열악한 환경이 되풀이 됐다.

 

전재희 부장은 “함바집을 놓고 건설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는 이미 몇 십 여 년간 이어져 왔으며, 함바뿐 아니라 탈의실과 화장실 등의 열악함 역시 존재한다”며 “포스코 노동자들의 싸움 역시 화장실과 탈의실 설치가 주요 요구사항이었던 만큼, 이들 노동자들에 대한 환경 개선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30여 년간 ‘비리의 온상’으로 숨겨져 왔던 함바집 비리가 이번 사건으로 투명성을 확보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들이 “내일이 아니어도 좋다”라고 말하기에는 30여 년간의 처절함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