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뉴스
“172명 자르고 나면 한진은 2차, 3차 정리해고 또 할 겁니다”
| 관리자 | Hit 647

전면파업 66일차, 한진중공업 조합원을 만나다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1-02-24 08:27:35 / 수정 2011-02-24 14:21:27

한진중공업과 부산지역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모여 문화제를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부산지역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모여 문화제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부산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이 회사의 정리해고 추진에 반대하며 전면 파업에 들어간 지 23일로 66일째를 맞았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4일 400여 명의 인력 감축 목표에서 희망퇴직자 등을 제외한 172명에 대해 해고를 최종 통보했다. 사측의 방침에 조합원들은 “이번 172명의 정리해고는 시작일 뿐이다.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영도조선소를 지키기 위해 다함께 싸울 수밖에 없다”며 정리해고 철회 투쟁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23일 저녁 부산 한진중공업 사내 광장에서는 부산지역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참가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에는 채길용 노조 위원장(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과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등이 고공농성중인 크레인위에서 연설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투쟁을 독려했고, 조합원 노래자랑과 민중가수 공연 등이 이어졌다.

문화제 후 평소보다 늦게 숙소인 신생활관에 들어간 조합원들을 만나 정리해고와 이후 펼치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어차피 이번에 지면 다음에는 내가 잘린다”

정윤관 조합원이 정리해고를 당한 심경을 털어놓고 있다.

정윤관 조합원이 정리해고를 당한 심경을 털어놓고 있다. ⓒ민중의소리


야참으로 라면을 끓여먹으며 둘러 앉아 있는 5명의 일행에게 물어보니 3명은 총을 맞고, 2명은 총을 맞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에서는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것을 ‘총 맞았다’고 표현한다.

이번에 ‘총을 맞은’ 정윤관(34)씨는 네 살배기 은우의 아빠다. 이날은 마침 은우의 생일이라 그는 어제 저녁 큰 맘 먹고 집에 다녀왔다.

해고 통보를 받은 심경을 묻자 정씨는 “기분 더럽지만 나는 동료들과 같이 있어 괜찮았는데 아내가 전화해서 울더라”고 덤덤하게 답했다. 그는 60일째 집을 나와 농성을 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정리해고를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400명을 잘라야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뭔가 추가 대책이나 발전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회사는 일단 사람부터 자르고 보자는 식”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정씨는 “정리해고 통보 뒤에 통장에 퇴직금이라고 730만원이 들어왔다”며 허탈한 듯 웃었다. 그는 “이게 내 몸값인가 싶어 비참하기도 하고, 이 돈으로 어디 가서 우리 식구 살라는 것인지 답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아버지도 한진에서 정년퇴임을 한 전직 조합원이다. “아버지도 다른 부산시민들처럼 이번 정리해고가 결국 영도조선소의 폐쇄로 가는 수순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며 “아버지가 ‘참고 견디면서 동료들과 함께 하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91년 노태우정권 시절 의문사한 박창수 노조 위원장과 2003년 고공농성 끝에 자결한 김주익 위원장과 함께 싸웠던 아버지가 정리해고 철회 농성을 하는 아들에게 ‘동료들과 같이 싸우라’고 말했다는 사연에 주변의 동료들도 한숨을 쉬었다.

정씨의 동료인 전모(39), 지모(30)씨는 정리해고 대상자는 아니지만, 두 달 째 같이 농성장을 지키며 싸우고 있다. 이들은 “한진은 투쟁 전통과 경험이 있어 끝까지 다 같이 싸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크고 작은 투쟁을 겪으면서 ‘함께 싸우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조합원들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위기의 근거로 드는 ‘지난 2년간 수주량 0척’도 노조와 영도조선소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필리핀에 지은 수빅조선소로 주문을 빼돌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좀 떨어진 자리에서 역시 동료들과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노모(57)씨는 입사 28년차다. 그는 “이번 싸움은 민주노조를 지키느냐 그 이전으로 돌아가느냐를 가르는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민주노조 이전 시절을 묻자 한진중공업 노조의 투쟁사를 술술 풀었다.

“식당도 없어 ‘벤또’라고 불리던 노란 도시락에 밥을 받아 아무 데서나 먹었는데 도시락에서 쥐똥도 자주 나왔다. 그러다 87년 7월 25일 밥다운 밥을 먹게 해달라는 ‘7.25 투쟁’이 벌어졌다. 우리가 들고 일어나니까 회사는 식당도 지어준다고 약속했고, 수당도 꼬박꼬박 챙겨줬다. ‘투쟁을 해야 요구를 들어준다’ 는 것을 깨달으면서 민주노조의 필요성과 힘을 실감했다.”

노씨는 “어용노조 시절에는 노조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회사에 다녔다”며 “인간 대접 못 받던 시절로 결코 돌아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투쟁의 승산’을 묻자 “승산이 있든 없든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같이 앉아있던 조합원들도 “어차피 이번에 지면 다음에는 내가 잘린다”,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측은 '정리해고를 해야 회사를 살릴 수 있다', '한진은 앞으로도 영도조선소를 꼭 지키겠다'며 신문광고와 언론 보도자료 등을 통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이미 회사 측이 ‘수주에 최선을 다하고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지난해 2월 노조와 맺은 합의를 어기고 해고를 했다”며 “경영진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숙소인 신생활관에서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숙소인 신생활관에서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민중의소리



‘라면에 침낭’ 불편한 생활...“농성 합류 조합원이 계속 늘고 있다”

조합원들은 평소 탈의실 겸 휴게실로 이용하던 신생활관에서 1인용 텐트나 침낭 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동안 점심을 지급하던 회사 측이 최근 식당을 폐쇄하면서 이들은 세 끼를 모두 직접 지어 먹고 있다. 자연스럽게 라면을 먹는 일이 늘고 있었다.

노조는 두 달째 이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농성에 합류하는 조합원이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진수(31) 조직차장은 “800여 명의 생산직 조합원 중 농성에 700명 가까이 참여하고 있다”고 현재 농성 상황을 전했다. 불편한 식사와 잠자리를 감수하며 영도조선소와 조합원 모두의 고용을 지키겠다는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의 농성 열기가 숙소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