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뉴스
“삼성이 내 딸을 정신병자로 몰았다”...또 다른 투신자살
| 관리자 | Hit 622

침묵했던 고인 아버지, 처음으로 말문 열어


“우리 딸을 살릴 수 있었던 건 저승사자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삼성 인사담당자의 ‘출근하라’는 말 한마디였다.”

 

1월 3일 삼성전자 LCD사업부 탕정공장에서 23세 여성노동자 박모 씨가 기숙사 18층에서 투신자살했다. 50일째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천안공장 고(故) 김주현 씨가 같은 기숙사 13층에서 투신자살한지 불과 8일전 일이다.

 

연이어 삼성 노동자가 투신자살했지만 박 씨의 사건은 사회적으로 묻혀버렸다. 유가족은 슬픔 속에 조용히 장례를 치렀고, 박 씨를 가슴속에 묻었다. 삼성 사측 역시 미디어충청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이유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어 사인을 함부로 말하긴 어렵다”며 말문을 닫았다.

 

그러나 딸을 잃은 애통함에 분노가 치민 부친 박모 씨(55세)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딸의 죽음이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려 가족들이 부담스러워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읊조렸다. ‘젊은 애가 결혼도 못하고, 아프고 늙어서 죽는 것도 아니고, 죽은 놈만 억울해서’ 용기를 냈다는 박 씨, 딸의 손때 묻은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 그는 자신이 죽을 때 딸의 방도 치울 거라는 가슴 시린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  부친은 고인의 손때 묻은 방을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내 딸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삼성이 몰아갔다

 

김주현 씨 투신자살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부 언론에서 김 씨의 사건과 같이 박 씨의 자살 소식을 알렸다. 병가 뒤 복직을 앞둔 여성노동자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부친은 ‘우울증’으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부친은 삼성 사측이 딸아이를 정신병자로 몰아 퇴사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회사 인사담당자가 정신병 환자라며 진료를 받으라고 강요했고, 퇴사를 강요했다. 삼성 사내병원에서도 면담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딸아이가 못 그만 둔다고 하니까 정신병으로 몰아갔다. 정신병이 있으면 어떻게 그동안 일을 했고, 입사를 했겠냐.

 

하도 정신병 진료를 받으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이상 없다’고 했다. 그 기록을 회사에 가져다줬다.”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직으로 일하다 3년 전에 천안에 있는 삼성 탕정공장에 입사, 라인에서 근무했다. 삼성에 입사한 박 씨의 친구들도 많았고, 다른 직장보다 월급이 많았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계속 퇴사를 강요했고, 박 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6개월 휴직을 권유했고, 박 씨는 12월 말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회사측 인사담당자의 연락에 박씨는 3일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아침밥을 먹고 천천히 가라는 부친의 말에도 출근할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단다.

 

“삼성은 나까지 불러 나와 딸을 앉혀놓고 사표 쓰라고 했다. 딸아이가 못 그만둔다고 울고불고 매달리며 완강히 거부하자 나한테 사표를 대신 쓰라고 했다. 놀랐다. 부모가 옆에 있는 데도 애를 몰아쳤다. 혼자 회사 담당자와 면담할 때는 어땠을까... 눈에 훤히 보였다. 부모 입장이 어땠겠나. 나는 더러우니까 때려치우라고 했다. 정신병자도 아닌데 병원 다니라고 하고,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런데 돈 모은다고 못 그만둔다더라. 가정형편도 안 좋고...

 

인사담당자가 받아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기 혼자 회사를 상대로 싸운 것이다. 부모가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조도 없고, 덩치도 조그만 게...”

 

▲  고인이 삼성에 다닐 당시 업무와 관련해 공부했던 흔적

왜 삼성이 그렇게까지 퇴사를 강요했는지 부친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부친이 알고 있는 ‘사소한’ 사건도, 삼성 인사담당자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납득되지 않는 상황은 자괴감과 분노로 다가왔다.

 

“딸아이는 3교대로 밤낮을 수시로 바꿔가며 일했다. 생체리듬도 다 깨졌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일했다. 많이 가르치지 못한 부모 죄다. 집안이 넉넉지 못한 엄마, 아빠가 죄인이다. 형편 어려운 건 회사 다니는 애들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휴직 전에 딸 기숙사 방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몇 십만 원도, 몇 백만 원도 아니고 몇 천원이 없어졌다. 나는 알뜰하게 돈을 모아둔 딸이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동료들과도 잘 해결됐다.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친 것도 아닌데, 경미한 그 사건을 가지고 발목 잡고, 퇴사를 강요했다. 그게 이유가 되는가? 인사담당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너무 냉정했다. 자기 승진을 위해서 말단 직원을 자르는 것 같았다. 이것도 이해가 안 된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부하직원의 사소한 실수를 덮어주고, 상사의 사소한 실수를 직원이 덮어주는 게 직장 상사 아닌가. 관용을 베풀고 사소한 실수를 하지 않게끔 하는 게 리더 아닌가. 이해가 안 된다.”

 

깨끗이 치워진 현장...이미 빈소는 차려져 있고
딸아이 대변도 못 해주고...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

 

3일 새벽 출근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집을 나선 박 씨는 회사측이 매몰차게 내치자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경찰은 오후 5시15분 투신한 것으로 추정했다. 부친은 오후 3시경 연락을 받았고, 저녁 6시가 넘어 천안에 도착했다. 삼성은 이미 딸아이를 장례식장으로 옮겼고, 가족들은 바로 빈소로 향했다.

 

“딸이 계속 전화를 안 받았다. 삼성 인사담당자랑 면담이 끝나고 계속 방황한 것이다. 전화 한 통 안 받을 정도로 얼마나 고민했을까. 전화 안 받는 애가 아닌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격분하고... 벌써 장례식장에 빈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삼성측은 모텔로 불러 보상금 협상을 시작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삼성을 향해, 가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단다. 딸아이가 죽은 현장도 가보지도 못했고, 친척들만이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현장에 갔다 왔을 뿐이었다. 경찰 조사도 어떻게 되는지 몰랐고, 단 하나의 CCTV만 보여줄 뿐이었다. 친척들은 박 씨가 기숙사로 들어가는 CCTV 장면만 봤다고 했다.

 

“4일장 치렀다. 그때 심정 같으면 속상해서 회사 정문에 상여를 두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두가 안 났고, 버틴다는 게 힘들었고, 친척들에게도 못할 짓이었다. 회사에서 하자는 대로 하고 말았다. 보상이 문제가 아니다. 분통이 터진다. 이유 없는 죽음이 어디 있는가. 경황이 없었다. 누가 죽음을 예측하는가... 삼성이 협상하자고 하고, 아이를 묻어야 하는지, 화장을 해야 하는지, 변호사를 사야 하는지 모든 게 막막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착하게 산 것 같다. 회사에 욕이라도 실컷 하고 사과 받고 했어야 했다. 딸아이 대변도 못 해주고, 아무것도 못해 주니까 가슴이 너무 아프고 미안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안타깝고, 잘못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3일 당일, 회사측이 아이를 데려가라는 전화 한 통만 했더라도 박 씨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 관계자가 옆에서 보호해주었더라면, 끔찍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부친은 자꾸 ‘안타깝다’고 했다.

 

“사람은 직감이라는 게 있는 거다. 전화만 해 줬어도... 고층건물이 유지되는 건 모래알갱이, 분말가루와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 때문이다. 회사에서 밤낮 일하면서 버티는 건 직원들이다. 지들 위해서 몇 년씩 근무한 직원이 없으면 사장이나 회장이나 지들이 어떻게 있겠냐. 그걸 잊고 산다.”

 

사후대책을 안 내놓는 건 범죄...삼성 책임 인정해야

 

박 씨는 학창시절 봉사상, 선행상, 교과우수상, 정근상 등을 휩쓸었다. 국가자격증만 8개다. 말썽 한번 안 부렸던 박 씨, 가정형편이 어려워 알뜰하게 생활하고, 돈만 벌었던 박 씨라 부친은 더욱 가슴이 아프다.

 


박씨는 휴직 기간에도 종종 아르바이트를 했다. 삼성에 다닐 때 일이 늦게 끝나 대전 자택에 새벽에 올 때면, 가끔 택시비 아낀다고 버스 15분 거리를 걸어왔던 박 씨라 부친은 목이 멘다. 그래서 딸에게 “시집 갈 수 있을 만큼 돈 벌었으니까 이제 삼성 그만 다녀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변해가는 아들, 동생의 시신을 보며 삼성에 맞서 싸우는 김주현 씨의 유가족에 대한 안부를 물으며 한숨짓던 박 씨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전부 다 우리 애만 탓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으면 정당화된다. 회사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후대책을 안 내놓는 건 범죄다.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공식적으로 삼성 대표자가 나서 사실 확인하고, 관리부족 책임지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기업 이미지가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문제다. 삼성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