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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오만한 불패신화가 ‘백혈병’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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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조국, 박노해 등 사회인사 536명, 삼성 직업병 문제 촉구

삼성전자의 처녀들은/ 하얀 우주복을 입고/ 독한 납용액과 1급 발암물질 벤젠과/ 날카로운 전자파 방사선을/ 복숭아빛 발그란 몸으로 빨아들여/ 모든 것이 하얘져/ 핏속까지 하얘져
붉은 피톨도 푸른 눈물도/ 우리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황유미처럼 박지연처럼/ 하얘져/ 새하얘져
- 박노해 <삼성 블루> 中

 

삼성반도체 노동자를 포함한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자들 중 104명이 암과 희귀질환에 시달렸다. 그 중 35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삼성반도체 백혈병’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이에 대한 해결은 좀처럼 더디다. 유가족과 해당 노동자들은 아직까지 산재승인을 받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으며, 삼성의 묵묵부답은 여전하다.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남발 역시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이 같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고군분투에 각계각층의 사회인사들 역시 동참을 선언했다. 얼마 전 소설 <허수아비 춤>을 발간한 조정래 작가와, 박노해 시인, 그리고 조국 서울대 교수와 김칠준 변호사 등 사회인사 536명은, 21일 오전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삼성 직업병 문제 촉구하는 선언에 동참했다. 특히 박노해 시인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을 소재로 한 <삼성 블루>라는 시를 전달하기도 했다.

 


“삼성, 과거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지난 2007년 3월,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고 황유미씨가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버지인 황상기씨는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끈질긴 싸움을 벌여왔다. 황상기 씨가 주축이 돼 2007년 11월 발족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으로 개명한 후 3년간의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이들 노동자에 대한 해결 방안 모색에 지극히 소극적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을 고용해, 제3의 컨소시엄을 꾸려 재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조사 방식이나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어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은 오히려 피해자 숫자를 계속적으로 속여 왔으며, 작업환경의 현실을 속이고 은폐했다”면서 “또한 삼성은 피해자들을 돈으로 매수해 산재를 은폐하려 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이 자리에 참가한 사회인사들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을 향한 삼성의 회유와 탄압 방식이, 과거 노동자들을 탄압했던 그것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칠준 변호사는 “책임회피와 시간 끌기, 회유와 협박 등의 방식이 과거 삼성의 모습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지난 몇 십년간, 직원들에게 자랑해온 삼성의 오만한 ‘불패신화’의 벽이, 삼성의 직업병 노동자들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을 비롯한 정부의 삼성 감싸기가 도를 넘고 있어 삼성의 산재 노동자들이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는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김칠준 변호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삼성에 취업한 젊은이들이, 이 같은 고단한 분쟁에 대비해 물질이나 작업환경을 그때그때 기재하겠나”며 “때문에 이후 불행한 원인이 이들을 급습했을 때, 산재신청을 하더라도 의학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원장 역시 “백혈병은 노출 농도와 노출 원인, 그리고 잠복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 남아있는 자료가 없을뿐더러 삼성에서 과거의 자료들을 말해주려하지 않아 의학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비밀을 내세우며 삼성 측이 안전보건과 관련한 문제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조사에는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도명 원장은 “안전 보건문제는 단순히 영업이익이나 관리대상으로 분류되는 기업비밀이 될 수 없다”면서 “삼성은 무엇보다 안전 보건에 있어 오픈 시스템을 가지고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차원의 원인 규명’과 ‘노조 설립’이 해결책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상기 씨는 무엇보다 ‘노조 설립’을 주장했다. 그는 “무노조 삼성에 만약 노조가 있었다면, 사업장 환경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확실히 하지 않았겠냐. 노조가 없기 때문에 유미가 죽었다”며 “특히 삼성 뿐 아니라 정부 또한 삼성 백혈병 노동자들을 내버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하소연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국민 차원의 원인규명 운동’과 더불어 국회의 문제 해결 의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 자체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거나, 국가기관에 의존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며 “삼성 노동자들의 문제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삼성 신화 그림자에 가려있는 노동현실에 대해 국민들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18세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질병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법원은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하며, 나아가 국회는 법 개정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삼성은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를 인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 △정부는 즉시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신뢰성 있는 진상조사 및 관련 제도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 △국회는 국가차원의 신뢰성 있는 진상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산업재해 및 화학물질ㄹ 관리에 대한 제도개선에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시민단체들은 이날 536명의 사회인사 선언을 계기로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삼성 사회책임 범국민 선언운동’을 확산시킬 계획이며, 산재 및 화학물질관리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화학물질관리 법안 개정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