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집행정지 심문일에 외부병원서 수술
구치소장 재량 따른 조처…판검사 당황
2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25호 법정.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과정에서 8억원을 수수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지난 18일 구속 기소된 최시중(74)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구속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문기일이 열렸다.
최 전 위원장은 구속 당시 심장혈관 질환 수술을 예약해 뒀다는 사실이 알려져 ‘꾀병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실제로 지난 21일 최 전 위원장은 법원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고, 사건이 배당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정선재)는 수술 예약 날짜인 23일 심문기일에서 의사인 전문심리위원과 최 전 위원장을 불러 수술의 긴급성과 필요성을 따져볼 참이었다.
그런데 이날 최 전 위원장이 앉아 있어야 할 피고인석은 비어 있었다. 법원은 재판이 열리기 10여분 전에 최 위원장이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려왔다. 방청석을 메운 10명 남짓의 기자들 만큼이나 법대에 올라선 재판부도 허탈한 표정이었다.
-재판장: 피고인을 소환했는데, 병원에서 이미 수술받고 있다는 사실을 소환 과정에서 알았어요. 구속집행정지 결정이 나기 전에 병원에 먼저 가 있는 것은 이례적인데요. 어떻게 된 거죠?
-검사: 구속상태는 유지되고 있고, 병원에 구치소 직원이 나가 있습니다. 수용자처우법(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37조에 보면 구치소장 재량으로 수용자가 외부병원 진료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재판장: 변호인 쪽은 알고 계셨어요?
-변호사: 저도 집행정지 신청 이후에 알았습니다.
-재판장: 구치소가 법원 관할기관이 아니다 보니, 알려주기 전에는 법원도 모릅니다. 조금 당황스럽네요. 피고인이 받아야 할 수술의 긴급성·필요성에 대해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들어 집행정지를 결정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어요.
-검사: 구치소에서 보고·협의 없이 외부 진료를 갔다는 것을 법무부를 통해 월요일 오후에 알았습니다. 규정상으로 검사의 지휘를 받는 것이 아니어서…. 재판장님이 당황스럽다시니 송구스럽습니다.
-재판장: 규정이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수술 끝나면 회복기간이나 입원기간에 대한 의견을 들어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해야하니 피고인 없어도 심문기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미리 예약된 수술 때문에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던 최 전 위원장은 정작 법원이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한 심리를 하던 그 순간에 이미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었다. 서울구치소와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최 전 위원장은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한 지난 21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23일 오전 7시부터 수술을 받았다. 최 전 위원장이 받은 수술은 ‘복부 대동맥류’ 수술로 혈관 기형 질환의 치료 목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구치소 자체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외부병원 이송진료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법원의 결정 없이 최 전 위원장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을 보면, 구치소장은 수용자의 적절한 치료가 필요할 경우 외부 의료시설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도 구속집행정지 결정 여부와 관계없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구치소가 외부병원 이송진료 사실을 법무부에 사후적으로 보고만 할 뿐,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하거나 검찰에 통보하는 규정이 없어 검찰과 법원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진 이후 비공개로 계속된 심문에서 전문심리위원은 “회복기까지 합쳐 통상적으로 20일의 입원치료가 필요하나, 나이와 합병증 유무, 수술경과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재판부는 심문 결과와 수술 경과 등을 종합해 수일 내로 집행정지 여부와 집행정지할 경우 그 기간을 결정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