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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맞은 세입자들… 2500만원 다가구 “1500만원 올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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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하루벌인데 그 큰돈 있겠나”
ㆍ외곽·지하 단칸방 밀려나… 아이들 학교 걱정 속만 타

서울 관악구 봉천1동에서 방 2칸짜리 다가구주택을 전세 2500만원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정모씨(46) 부부.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 부부의 월 수입은 200만원 안팎이다. 중 3, 고 1짜리 두 아이의 학원비 대기도 벅찬 정씨 부부다. 그러나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1500만원을 올려달라”는 말을 듣고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씨는 “하루 벌어 사는 입장인데 1500만원이라는 큰돈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사를 가야 하는데 아이들 학교 걱정도 앞선다”면서 “은행 빚은 쌓여 있는데 벌어놓은 돈은 없고, 친척·이웃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한두 번이지…”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연방 줄담배만 피워댔다.

 
 
 

매매가에 육박… ‘전셋값이 기가 막혀’ 서울 홍제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26일 매매가에 육박하는 전세가격이 적힌 매물정보가 붙어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서울 마장동에 사는 김향미씨(44). 반지하 방 2칸짜리 집(76㎡)을 보증금 2500만원·월세 25만원에 살고 있는 김씨는 최근 집주인 등쌀에 월세를 5만원 더 올려줬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남편의 월 수입은 200만원이 채 못된다. 공장 월세 70만원과 초등 6년, 중 3년생인 두 아들의 월 학원비 60만원과 월세금 30만원을 빼면 손에 쥐는 것은 30만~40만원이 고작이다.

김씨는 “돈 좀 있는 집이야 한달 5만원이 별것 아니겠지만 한달에 30만~40만원 가지고 사는 사람한테 5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결국 반찬 수를 줄여가면서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울먹였다.

전셋값 오름세로 “무조건 올려받고 보자”는 심리가 집 없는 서민들의 보금자리 시장으로 확산되면서 이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영세 서민들이 대부분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채 살던 곳을 떠나 값싼 외지를 찾는 ‘전세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30년 이상 된 다가구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금천구 독산3동. 26일 이곳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옆집에서 전세보증금을 몇 백만원 올려받았다는 얘기가 들리면 ‘나도 올려받고 보자’는 분위기”라며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세입자들은 냄새나고 습기찬 지하 단칸방으로 내려가거나 인근 시흥·안산시로 밀려간다”고 말했다.

관악구 봉천1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철영씨는 “강남, 목동 등 인기 지역 전세가격 급등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몇 천만원짜리 전셋집까지 보증금이 수천만원씩 뛰어오르는 기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방 한칸짜리 지하방을 전세 2000만원에 살던 이모씨(39)는 최근 시흥시로 이사갔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한꺼번에 2000만원이나 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없는 사람은 편안하게 살 권리조차 누릴 수 없다”며 “정부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조모씨(42)도 최근 이사를 결심했다. 3년 전부터 서울 강동구 고덕동 76㎡ ㅅ아파트에 1억1000만원을 주고 전세를 얻었지만 최근 집주인이 “보증금 1억원을 더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집을 줄여볼 생각도 했지만 인근 56㎡짜리 아파트 전세보증금 역시 그 사이 1억5000만원으로 뛰었다. 그는 결국 용인이나 다른 수도권 지역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민주노동당 민생희망본부 이은정 부장은 “최근 단독·다가구 주택 소유자들이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물건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며 “정부는 임대아파트 공급 확대 등을 통해 전세대란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