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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동자 13층서 투신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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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삼성이 아니다”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에서 일했던 김주현 씨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회사 기숙사 13층에서 11일 아침 뛰어내려 자살했다. 병가기간까지 포함해 삼성전자에서 일한 지 1년1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가족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국화꽃 속에 묻힌 사진속의 김 씨를 바라보며 오열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 씨의 부친과 누나는 멍하게 먼 곳을 바라보다 울었다를 반복했고, 친척들도 침통한 표정으로 별로 말이 없었다. 김 씨의 모친은 실신 상태였다.

 

“믿기지가 않는다. 이건 아니다.”

 


설비 엔지니어로 삼성전자 입사...발령 한 달 만에 “14~15시간 일한다”
4월 피부병, 7월 부서이동, 10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공업고등학교에서 장학금까지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김씨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009년 11월4일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에 입사, ‘초인류기업’이라 불리는 삼성전자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김주현 이름 앞에는 ‘LCD사업부 FAB팀’이라는 직책이 붙었다.

 

가족들에 의하면 김 씨는 고가점수도 높았고, 김 씨가 일했던 그룹 부서장도 ‘성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월 31일까지 연수를 받고, 2월에 발령받아 삼성전자에서 일한 지 한 달 만에 김 씨는 가족들에게 “내가 생각했던 삼성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숙사(충남 천안 탕정LCD공장에 위치) 생활을 했던 김 씨는 한 달에 한 두번 인천 자택에 오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다며 힘들어했다. 4월에 가족들과 만난 김 씨는 방진복을 입고 근무한다며 피부병을 앓고 있는 발과 다리를 보여줬고, 7월에 만난 김씨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 업무에 시달리고, 밥맛도 없고,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있냐”며 가족들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부친 김명복 씨에 의하면 그 무렵 김 씨는 피부과 다닌 진료기록을 제출하고, 설비 엔지니어에서 사무실 관리 쪽으로 부서를 이동했다. 10월에 만난 김 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진단을 받고 결국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아들이 주말에 못 오고 평일에 오고 했다. 3교대 근무라지만 8시간 일하는 게 아니라 14시간, 15시간 일한다며 힘들다고 했다. 너무 시달린다고, 힘들다고, 관둔다고 했지만 부모 입장에서 그래도 삼성이니까 버티고 일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주현아 이겨내서 열심히 일하라’고 했다. 4월에 아들이 집에 왔는데 발부터 다리까지 피부병에 걸렸는지 피부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방진복을 입고 일하고, 약품 얘기를 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들이 말하는 게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래도 조금 더 버티고 일해 보면 나아질 것이다, 삼성 이미지가 좋지 않냐 며 아들을 다독였다. 그러니까 아들이 ‘아빠, 왜 내 말을 못 믿어. 회사 가기 싫어’하고 말했다. 마음이 아팠다.”

 

설비 엔지니어로 같이 근무했다는 동료 역시 김 씨가 근무시간이 길어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 3교대 8시간 근무라고 해도 설비 엔지니어의 경우 잔업이 잦단다.

 

김 씨와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눈 세 살 많은 누나 김정 씨는 동생이 근무가 재미있다고 말한 적인 한 번도 없다고 기억했다. ‘월급 많이 주니까 힘들어도 참고 다니라고 했는데 그 돈이 뭐라고’ 읊조리며 통곡했다.

 

“회사 분위기상 부서 이동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일에 적응을 못
▲  김씨가 사망 직전 가족에게 보낸 문자
해서 부서이동을 했다는 회사 분위기가 있어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부서가 바뀌고 일을 배워야 하는데, 상사가 일을 잘 안 가르쳐준다며 힘들어했다. 기계가 고장 날 때마다 수리하고 리포트 20장을 회사에 내야 한다고 했고, 빨리 기계를 고치지 않는다고 주위에서 닦달한다고 했다. 또, 천안공장에서 기숙사까지는 8km가량 떨어져 있는데, 출근시간에는 셔틀버스가 제 시간에 오지만, 일이 늦게 끝나 잔업하고 퇴근하려면, 퇴근 시간이 언제인지 몰라 항상 셔틀버스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10월초 집에 온 김 씨는 근무가 힘들다며 눈물을 흘리며 밤새 잠을 못 이뤘다. 병원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라며 5~6개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 회사 측은 올해 1월10일까지 2개월 병가신청을 승인했고, 김 씨는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치료받았다.

 

“병원에서 직속상관이 기계적으로 일을 시키니까 못 이겨내서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다며 최소 5~6개월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다.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했다.”

 

결국 김 씨는 병가를 마치고 첫 출근해 11일 아침8시 일을 시작하는 날 새벽5시59분, 어머니, 아버지, 누나에게 똑같이 ‘엄마 아빠 누나 힘내시구 미안합니다’는 문자를 남겼다. 불안한 가족들은 바로 전화했지만, 김 씨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고, 복도형 아파트 기숙사 13층에서 몸을 던졌다. ‘추락사’. 병원 측은 아침7시28분으로 사망시간을 추정했다.

 


유가족 “삼성전자가 죽음 방치했다”...가족에게 연락 안 와
사망 전 마지막 문자 "엄마 아빠 누나 힘내시구 미안합니다"

 

유가족들은 회사 측에 여러 가지 의혹과 불만을 제기하며 삼성전자가 김 씨의 죽음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먼저 김 씨가 자살하려고 기숙사 6층 방에서 13층 창틀 난간에 올라서려고 할 때, 경비와 보안요원이 4명이 이를 말린 다음 기숙사 방에 김 씨를 혼자 뒀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당시 회사 측 관계자는 아파트형 기숙사 동을 지키는 동장에게 인계했다고 했지만, 혼자 방에 있던 김 씨는 다시 13층으로 올라가 뛰어내렸다. 김 씨 부친은 경찰 조사 때 CCTV를 찍힌 김 씨의 마지막 모습이 새벽 6시 47분이라고 했다. 7시 28분경 김 씨의 사망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40분가량 김 씨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주현이를 혼자 뒀는지 이해가 안 된
▲  김씨의 모친이 전화를 해 아들의 소식을 알게 됐다.
다. 그리고 발견해서 데리고 온 곳이 13층이고, 또 13층에서 뛰어내렸다. 40분 동안 주현이가 눈바닥에 그대로 있었다는 건데,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우리가 주현이에게 아침6시부터 계속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전화가 없었다. 7시43분에 모친이 주현이에게 전화했는데, 119요원인지, 회사 사람인지 다른 남자가 받더니 순천향대병원으로 오라고 해 부랴부랴 갔다. 병원에 가니 주현이가 안치실에 있었다.”

 

또, 김씨가 2개월 병가를 마치고 1월11일 근무를 준비하면서 병원 측은 ‘점차 양호해지고 있지만 차후 2~3개월 더 치료가 요한다’고 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에서도 근무를 희망해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가족들이 김 씨의 근무 환경을 묻자 장례식장을 찾은 회사 측 관리자가 개인적인 사유로 자살했다는 투로 말해 유가족이 상을 엎는 일도 있었다.

 

“다 안 나았으면 일을 시키지 말던지. 삼성전자 공장 내부 전문의도 더 쉬어야 한다는 의견을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설비 엔지니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작업이 위험하지 않은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문제가 없다고만 하지 솔직하게 드러내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근무기록 있나, 스트레스를 받은 주현이와 상담을 한 기록이 있나 등 물었는데, 화장터 잡아놨다며 장례식만 빨리 치르려고 해 화난 어르신이 상을 엎기도 했다. 조사원이라고 매일 3~4명씩 돌아가면서 장례 지원하러 왔다고 하는데, 동태를 감시하는 것 같아 따지기도 했다. 우리는 유가족으로 진정한 사과를 원하지만 공식적인 사과조차 없었다.”

 

김 씨의 친척들은 인터뷰 당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며 화를 누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대학 때 방위산업체에 지원해 인천의 남동공단에서 경력을 쌓을 정도로 꼼꼼하게 미래를 설계해 나갔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깨에 무거운 짐을 졌던 김 씨라 그의 죽음을 더 안타까워했다.

 

“부모가 얼굴 묽히는 일은 안하는 아이였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생각해 말썽 안 부리며 착실하게 살았던 아이다. 힘들어도 참고, 검소했고, 술도 안 좋아했다. 주현이나 주현이 누나나 아버지가 학원차량 운전하고, 엄마가 청소, 식당일 하며 힘들게 일하는 걸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라...”

 

삼성전자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할 것이다”
삼성전자 근무자 자살 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아...“업무상 스트레스 산업재해”

 

삼성전자 LCD사업부 회사 관계자는 “김 씨를 발견하고 회사 소방응급장비센터, 동장, 상사, 가족, 경찰에게 모두 연락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정환경도 넉넉하지 않고, 나이도 어린데, 안타깝게 생각한다. 오늘 유족들과 대화해서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할 것이다.”고 전했다. 김 씨가 장시간 근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3교대 근무가 원칙이지만 부서마다 근무 차이가 있다”고 말했으며, 스트레스, 우울증이 업무상 질병이라는 제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관련해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은 최근 서울대의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화학물질 노출평가 자문보고서’ 결과 김 씨가 일한 “반도체 공정 설비 엔지니어가 정비작업을 경우 다른 직종보다 고농도 화학물질에 노출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며 피부병에 걸렸었다는 김 씨의 근무 환경을 의심했다.

 

또, 반올림 관계자는 “반올림에 제보한 사람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자살이 많다는 소식을 접해왔지만, 백혈병 및 희귀질환에 걸린 경우보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자살한 노동자 소식은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측도 백혈병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워 자체 건강연구소를 만들 거라고 발표할 당시 ‘빈번한 자살’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며 “장시간 노동, 무노조 경영과 같이 삼성의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직 문화 등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고 추측했다.

 

한국노동안전노건연구소 관계자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 가장 심각한 증상인 자살인데, 산업재해로 인정된다”며 “관건은 스트레스 요인인데, 일이 많은지, 직장 문화가 불평등 한지 등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  넋이 나간 김씨의 부친

김 씨의 사망은 여러 각도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 사망사건에 대한 경찰 조사 내용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 및 희귀질환으로 고통을 받거나 사망하는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삼성백혈병 문제는 이미 사회적 과제이며, 김 씨 역시 그 가운데 있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김 씨의 경우 설비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은 각 종 화학물질에 노출된 것은 아닌지, 방진복은 제대로 착용했는지, 피부병은 왜 생겼는지,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어디서 기인했는지,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업무와 연관되지 않는지, 삼성전자 조직 내부 문화가 스트레스를 야기하지는 않는지, 업무와 연관된다면 산업재해는 아닌지...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는 상태다.

 

현재 남은 것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게 힘들어 대학 당시 전자 쪽 전공을 살려 다시 공부해 공기업에 입사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던 김 씨를 이제 만날 수 없다는 것과 유가족들의 외침뿐이다.

 

“주현이 같은 희생자가 더 있으면 안 된다. 회사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과실을 책임져야 고인도 편하게 하늘로 갈 것이다. 사고 규명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이건 아니다. 믿기지가 않는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