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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선진화 정책이 KTX 탈선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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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 줄어든 선로 열차 점검, 대부분 외주화
허준영 사장, 5천명 이상 구조조정...예고된 사고

지난 2월 11일 광명역에서 KTX 열차 탈선사고가 있었다. KTX 개통 7년 만에 일어난 대형사고였지만 인명피해가 없어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사고 열차 KTX-산천에 특동(대통령 전용열차)이 3량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 상징적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이명박 정권의 무분별한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있으며, 그 종착점이 어디인지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와 철도공사는 사고 3일만에 광명역 사고의 원인이 ‘노후 케이블 교체 공사에 나선 용역업체 직원이 선로전환기 단자함의 너트 하나를 끼우지 않은데다, 철도공사 직원이 조절단자함 표시회로를 잘못 조작한 것’이라고 서둘러 발표하고는 입을 닫았다.

더불어 언론들은 ‘브라질 고속철도 수주’를 걱정하며 작업자 부주의를 탓하기에 바쁘다. 예상은 했지만 이 엄청난 사고의 원인을 단지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 버리는 국토해양부와 철도공사의 후안무치에 분노가 치민다. 수천명을 태우고  시속 300㎞로 달리다 탈선으로 전복되는 KTX 열차를 상상해 보라.

사고를 부르는 선진화 정책? 철도 안전을 위한 시스템 붕괴

철도 사고는 한번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교통 마비 등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온다. 다른 나라의 사고 사례를 언급할 것도 없이 8년전 대구지하철 참사만 기억해도 그렇다.

그래서 철도 운영의 가장 기본은 ‘안전’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선 차량과 선로, 전차선, 전자제어장치, 열차운행정보 등 각종 시설과 시스템, 그리고 노동자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철도 안전을 위한 총체적인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음이 이번 사고로 표출됐다. 효율과 성과, 돈벌이를 위한 상업적 운영만이 선(善)이라는 확신에 찬 이명박 정권과 낙하산 경영진의 기만적인 공기업 선진화 정책이 국민의 발이 철도를 전복시킨 것이다.

   
▲ 철도 현장은 인력감축으로 인해 노동강도만 강화된 것이 아니라 허준영 사장 취임 이후 경영평가, 내보이기식 성과주의, 돈벌이 위주의 열차 운행 조정 등으로 공공부문 노동자의 자긍심은 커녕 언제 구조조정 대상이 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뿐이다. 2월11일 철도노동자들이 탈선한 KTX-산천 열차를 수리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지난 수년간 정부의 철도 선진화 계획에 따라 경영효율화를 명목으로 현장 인력을 대폭적으로 감축하고 외주, 위탁했다. 지난 2009년에는 5천1백15명의 인력을 감축했는데 그 중 시설 9백89명, 전기 7백66명, 차량 1천2백03명 등 현장의 유지보수 인력이 무려 57.9%, 2천9백58명에 이른다. 또한 KTX 2단계 개통, 경의선, 경춘선 등 신규노선 개통으로 최소한의 안전 업무마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내부 규정을 고쳐 차량, 시설, 전기 등의 유지보수 업무를 아예 축소 조정했다.

이번 사고가 난 신호설비는 2주에 1회 점검하던 것이 월 1회 점검으로, 무선설비와 역무자동설비는 월 1회 점검에서 3개월에 1회로 축소됐다. 게다가 KTX 차량 점검도 3천5백㎞ 운행에서 5천㎞ 운행으로, 선로도보 순회점검도 주 2회에서 주 1회로 줄어들었다.

철도노동자의 위기는 곧 철도 안전의 위기

그것도 모자라 열차 안전 운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업무까지 정부의 인력 가이드라인, 비용절감 운운하며 거리낌없이 외주와 위탁을 추진했다. 국영철도에서 공기업인 철도공사로 전환될 때 철도노조의 요구에 따라 사회적 합의로 이뤄낸 철도 안전의 마지막 보루로 작동하고 있는 ‘철도 운영과 철도 시설의 유지보수 업무의 통합’, 즉 안전을 위해 철도 운영회사인 철도공사가 철도 시설의 유지보수 업무를 직접 담당토록 합의한 것을 철도공사 스스로 유지보수 업무의 외주화를 통해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사고가 일어난 KTX 선로의 유지보수 업무 전체가 이미 외주화된 상태이며 철도공사는 관리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철도 운행의 유기적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며 결국 철도노동자의 우려대로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철도 현장은 인력감축으로 인해 노동강도만 강화된 것이 아니라 허준영 사장 취임 이후 경영평가, 내보이기식 성과주의, 돈벌이 위주의 열차 운행 조정 등으로 공공부문 노동자의 자긍심은 커녕 언제 구조조정 대상이 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뿐이다.

고객 확보라는 명목으로 KTX 운행 시간을 확대 조정함으로써 시설물에 대한 안전 점검 시간마저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경영평가 등으로 고장이나 장애가 발생해도 이를 감추거나 임시조치만으로 열차를 우선 운행하는 일들이 은연중에 벌어지고 있으며, 철도 현장에선 이를 ‘수건 돌리기’에 비유하고 있다.

이번 KTX 탈선사고의 경우, 20분 이상이 열차가 지연되면 환불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는데 그 책임이 올곧이 경영평가, 징계 등으로 현장 직원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보다 우선 조치를 통해 정시운행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보다 안전’,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해 실천해야

이번 광명역 사고와 관련해 국토해양부 사고조사위원회의 최종 결과 보고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추측하건대 결국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용역회사나 철도 직원을 사법처리하겠다는 엄포로 이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철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사고는 재연될 것이며 그 피해자는 또다시 철도를 이용하는 국민이 될 것이다. ‘돈 보다 안전’이라는 철도 운영의 가치와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실천을 통해 ‘철도 선진화, 세계1등 철도’라는 구호 속에 진행되고 있는 돈벌이 위주의 철도 정책을 바꿔내야 할 것이다.